우리의 인생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기도 하고, 작은 사건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만날 때 우리는 흔히 “우연이었다”, “운이 좋았다”, 또는 “운명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다루었다면,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설명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제3장의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입니다.
작정(decree)이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따라 일어날 모든 일을 정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순간적인 결정이나 변덕스러운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립성과 불변성에서 나오는 영원하고 지혜로운 뜻입니다.
이 교리는 오랫동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인간에게 운명론적인 두려움을 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구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그리고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자유롭게 작정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1항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자신의 뜻의 지극히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따라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자유롭게 그리고 변함없이 작정하셨다.”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한 작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켜보다가 상황에 맞추어 계획을 수정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따라 모든 일을 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정과 작정은 칼빈이 새롭게 만들어 낸 사상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기 위한 교리입니다.
하나님께 우연은 없다
인간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많습니다.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통제 밖의 우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역사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작은 사건까지도 자신의 섭리 가운데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건에 하나님이 동일한 방식으로 관여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시는 방식과 죄악 된 행동을 허용하시는 방식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작정하셨다면 인간의 죄도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를 분명히 부정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지만 죄의 조성자가 아니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의지를 강제로 억압하거나 피조물의 책임을 없애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주셨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에게 그 행위의 책임을 묻습니다(행 2:23).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은 악한 의도로 요셉을 팔았지만, 훗날 요셉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하나님은 악을 선이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악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악한 사건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연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롭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하나님의 작정을 이해하려면 제1원인과 제2원인의 구분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궁극적인 제1원인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통 피조세계의 실제적인 수단인 제2원인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제2원인에는 자연법칙과 인간의 선택, 다양한 환경과 사건 등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를 이루어 가는 수단까지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은 “무슨 일이든 정해져 있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숙명론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허용적 작정
죄와 악의 문제에서는 하나님의 허용적 작정(permissive decree)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악을 허락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죄의 적극적인 원인이 되지 않으시면서도 인간의 악한 행동을 허용하시고 그것까지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구원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는 등 적극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반면 죄의 경우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새로운 악을 만들어 넣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 된 욕망을 따라 행동하며 그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작정적 의지와 명령적 의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때 작정적 의지와 명령적 의지를 구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작정적 의지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계획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정하신 뜻입니다. 반면 명령적 의지는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통해 인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죄를 금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적 의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더라도 그 죄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자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 구분을 이해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오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작정 교리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목적뿐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까지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3. 예정과 선택|구원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설명한 뒤 인간의 구원 문제로 들어갑니다.
예정(predestination)은 하나님의 전체 작정 가운데 특별히 인간과 천사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다룹니다. 여기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선택과 유기를 말합니다.
이 주제는 신학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핵심은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인간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
선택은 언제 이루어졌을까요?
에베소서 1장 4절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훗날 믿음을 가질 것을 미리 보시고 선택하신 것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에게서 미리 발견된 믿음이나 선행, 끝까지 인내할 가능성을 조건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목적과 선하신 기쁨에 따른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선택의 원인이 아니라 선택으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의 열매이며 구원을 받는 수단입니다.
선택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택 교리의 최종 목적은 “누가 선택받았는가?”를 추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엡 1:3-6).
선택과 유기는 똑같은 방식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3항은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정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이를 흔히 이중 예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선택과 유기를 완전히 대칭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적극적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을 주시며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반면 유기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악을 만들어 넣어 죄를 짓도록 강요하신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정당한 책임을 지며, 하나님은 그 죄를 억제하시는 은혜를 거두거나 그가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 역시 로마서 9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하면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라고 질문한 뒤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답합니다(롬 9:14).
예정 교리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심판할 기준을 주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죄인이 구원받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임을 깨닫게 하는 교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된 사람들의 수가 하나님 안에서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교회의 궁극적인 미래가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충실하게 전해야 하고, 성도는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은 전도와 기도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 선택받았는지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와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더욱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합니다.
교훈과 적용|작정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교리다
하나님의 작정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운명론이나 결정론을 가르치는 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뿐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도 사용하시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선택하고, 노력하며 맡겨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일의 성패가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택의 교리는 자신의 자격을 자랑하게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믿음이나 선행을 미리 보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시작되었다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와 찬송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내 계획대로 되느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다는 것은 운명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신뢰하며 오늘의 책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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