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모두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첫 장을 **「성경에 관하여(Of the Holy Scripture)」**로 시작합니다. 하나님론이나 창조론보다 먼저 성경을 다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먼저 확립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교회의 권위에 의존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으며, 교회의 가르침과 모든 교리는 성경에 의해 판단받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윌리엄 휘태커(William Whitaker, 1548–1595)는 “모든 교리는 성경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전체를 관통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여러 신학 주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교리를 판단하는 최종적인 기준입니다.

1항|계시 — 왜 기록된 성경이 필요한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1항은 먼저 하나님께서 자연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하늘과 땅,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하나님과 선악에 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자연의 빛(light of nature) 또는 일반계시라고 부릅니다.
도르트 신조 역시 타락한 인간 안에 희미하게나마 자연의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연적인 것들,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 얻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만으로는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일반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지만 구원자 하나님을 충분히 알게 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여러 시대와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이후에는 그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자신의 뜻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은 중요한 선언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정경이 완성된 이후 교회는 새로운 계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항|정경 — 어떤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제2항은 구약과 신약의 정경을 제시하면서 이 모든 책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어떤 책을 성경으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신앙뿐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궁극적인 규범이 성경입니다.

3항|외경 — 왜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외경(Apocrypha)을 정경과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보통 외경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정경인 성경의 일부가 아니다.”
따라서 외경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없으며 다른 인간의 저술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과 중요한 차이를 이루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교가 외경으로 분류한 여러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지만, 개혁주의 교회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기준은 결국 하나님의 영감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단순히 받아쓰는 기계처럼 활동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기억과 언어, 능력과 문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책마다 어휘와 문체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성경론은 성령께서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역사하셨음을 고백합니다.
4항|성경의 권위 — 누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는가?
제4항은 종교개혁 성경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지 않고, 진리 자체이시며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성경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에게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집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이성만으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휘태커는 성령의 내적 증언이 없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듣는다 하더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객관적인 권위와 그것을 믿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언은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5항|신적 기원의 증거 —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는가?
성경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주는 여러 외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 성경이 다루는 내용의 탁월함, 교리의 효능, 문체의 장엄함, 각 부분의 일치, 전체적인 목적과 주제, 인간의 구원에 관한 가르침 등이 그것입니다.
교회의 증언도 중요합니다. 개혁주의는 교회의 가르치는 직분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성도들이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증거만으로 신자에게 궁극적인 확신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완전한 설득과 확신은 말씀과 함께,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에서 옵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성경론은 신비주의도 아니며 합리주의도 아닙니다.
성경의 객관적인 증거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고백합니다.
결국 종교개혁이 고백한 것은 단순합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아니며,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항|성경의 충족성 — 성경 외에 다른 계시가 필요한가?
제6항은 성경의 충족성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추론(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을 통해 성경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도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추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된 문장만 말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기록된 진리가 있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부터 적절하고 필연적으로 추론되는 진리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삼위일체 교리를 들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교리입니다.
이 점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단순한 **성경엄수주의(biblicism)**와도 구별됩니다.
동시에 신앙의 본질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예배와 교회정치의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본성의 빛과 기독교적 분별을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러한 판단도 언제나 말씀의 일반적인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서 성령의 영감과 조명도 구별해야 합니다.
영감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역사이고, 조명은 이미 기록된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믿도록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영감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입니다.

7항|성경의 명료성 —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가?
성경의 모든 내용이 똑같이 쉽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명료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며 지켜야 할 내용은 성경의 여러 곳에 충분히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배운 사람뿐 아니라 배우지 못한 사람도 통상적인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구원에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명료성(clarity of Scripture)**입니다.
이 원리는 성경을 해석할 권위와 능력이 특정 교회의 교도권에만 있다는 주장에 대한 종교개혁의 중요한 응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적 해석의 권리는 자의적 해석의 권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 자체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할 책임이 함께 주어집니다.
8항|성경 원어와 번역 — 왜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중요한가?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와 돌보심을 통해 성경을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교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최종적으로 호소해야 할 기준은 성경의 원어 본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동시에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권리와 책임이 있으므로 성경은 각 나라와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성경 번역은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도록 하기 위한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9항|성경 해석의 원리 — 성경은 무엇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한 해석 원칙을 제시합니다.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성경 자체이다.”
따라서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의미에 의문이 생길 때는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모호한 것은 명료한 것에 비추어 해석한다.”
는 원리입니다.
그 근본적인 전제는 성경 전체의 궁극적인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과 완전히 단절시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중세의 자의적인 성경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특히 하나의 본문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여러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보다 본문의 문법과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서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예가 성경의 4중적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을 해석할 때,
- 문자적 의미 — 팔레스타인에 있는 역사적 도시 예루살렘
- 풍유적 의미 — 그리스도 또는 교회
- 도덕적 의미 — 신자의 영혼
- 신비적·종말론적 의미 — 천상의 새 예루살렘
등으로 해석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해석이 본문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해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경계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며, 문법적·역사적 문맥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10항|최고의 재판관 —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누구인가?
마지막 10항은 제1장 전체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교회의 모든 종교적 논쟁과 공의회의 결정, 고대 저자들의 견해와 사람들의 교훈, 개인의 생각을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할 최고의 재판관은 인간이나 교회가 아닙니다.
신앙고백은 그 최고의 재판관을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과 성경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이 영감하여 기록하게 하신 성경의 진리와 모순되는 새로운 진리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유명한 신학자도, 목회자도, 교단도, 교회의 전통도 성경의 최종적인 권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를 판단합니다.
교훈과 적용|우리의 신앙과 삶은 얼마나 성경에 의존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교회의 전통과 앞선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을 존중하고 비판적으로 참고했지만, 어느 신학자나 교회의 전통도 성경보다 높은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이 강조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정신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목회자의 설교나 신학자의 주장, 개인적인 체험이나 이른바 ‘하나님의 음성’까지도 그 자체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설교를 분별한다는 것도 설교자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성경에 비추어 확인하는 신앙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과 박해의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번역하고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감수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을 공부한 후 우리에게 남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의 신앙과 삶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있는가?”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지를 넘어, 우리의 믿음과 판단과 삶이 실제로 말씀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성경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신앙과 삶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기준입니다.
참고자료
'지혜의 속삭임 >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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