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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4)-창조

by 전가치 202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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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의 첫 문장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세상은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흐름도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제2장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고, 제3장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다룬 뒤, 제4장에서는 그 작정이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사역인 창조를 설명합니다. 이어지는 제5장에서는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존하고 다스리시는지를 섭리라는 주제로 다룹니다.

따라서 창조 교리는 단순히 “세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가?”만을 묻는 교리가 아닙니다. 세상은 누구에게서 왔으며, 인간은 누구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됩니다.


1. 삼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4장 1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창조를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고백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창 1:1), 만물은 성자를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요 1:2-3; 히 1:2). 또한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성부만의 사역이 아니라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늘과 땅, 바다와 산, 생명체와 우주의 질서를 바라보면 우리는 단순히 자연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세계는 창조주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나타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

시편 104편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노래하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로 지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자연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찬송하게 하는 풍성한 원천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창조주의 존재와 능력을 증언합니다.

R.C. 스프로울은 특히 ‘무로부터의 창조’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초월적인 위엄과 능력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창조 교리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에서 창조하신 하나님

기독교 창조론의 중요한 고백 가운데 하나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려면 이미 존재하는 재료와 도구가 필요합니다. 조각가에게는 돌과 끌이 필요하고, 건축가에게는 건축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물질을 이용하여 우주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사용하여 만들지만, 하나님은 존재 자체를 있게 하십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은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은 물질세계만을 실재라고 보지 않습니다. 천사를 비롯한 영적 존재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 매우 좋았습니다.

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본래적인 구성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는 선했고, 인간 역시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창조세계는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드러내는 피조세계입니다.


2. 성경과 과학, 창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조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과학과 성경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계시와 자연세계가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두 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주신 하나님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자체는 궁극적으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도,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도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오 사건이 주는 교훈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지동설을 둘러싼 갈릴레오 논쟁입니다.

성경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인간의 관찰 관점에서 자연현상을 묘사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 자체가 천동설이라는 특정한 천문학 체계를 가르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성경 해석과 당시의 우주관을 밀접하게 연결했고, 1633년 갈릴레오는 로마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동설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과학이 언제나 옳고 성경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 자체의 가르침과 우리가 성경에서 추론한 해석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과학적 이론 역시 새로운 증거에 따라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신뢰하면서도 자신의 성경 해석과 과학적 판단에 대해서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의 ‘6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창세기의 창조 ‘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기독교 안에는 오랫동안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장 1항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엿새 동안(in the space of six days)”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이 표현을 오늘날 논쟁되는 모든 과학적·연대기적 질문에 대한 상세한 해답으로 확대해서 읽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젊은 지구론과 오래된 지구론, 창조의 날에 대한 해석, 진화와 창조의 관계,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 등은 오늘날에도 논쟁이 계속되는 주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논쟁 속에서도 신앙고백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고, 창조된 세계는 본래 선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에 관한 논쟁에서는 성경에 대한 신뢰와 함께 겸손과 사랑도 필요합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고백하되, 해석상 논쟁이 있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하나님의 말씀 자체와 동일시하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4장 2항

창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마지막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생명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위치를 주셨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개신교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창세기에서 말하는 ‘형상’과 ‘모양’을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인간적 특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표현하는 말로 이해해 왔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한 가지 능력으로만 제한해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으며(창 1:26),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존재이고(골 3:10), 본래 의와 거룩함 가운데 창조되었습니다(엡 4:24).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사랑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신적인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영원한 구별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하게 훼손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구원 안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을 닮아 가도록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지능이나 능력, 사회적 지위, 생산성 또는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부여하신 존엄성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인종과 성별, 나이와 언어, 국적, 장애와 사회적 조건 등의 차이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외국인과 나그네, 장애를 가진 사람, 어린아이와 노인,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단순한 사회적 예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신학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창조주에게 책임을 진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율법을 새기시고 양심을 주셨습니다(롬 2:14-15).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할 능력이 있었지만, 동시에 불순종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를 맺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며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죄와 죽음이 인간의 삶에 들어오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행복은 창조주로부터 독립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참된 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교훈과 적용|창조주를 알 때 인간을 바르게 볼 수 있다

창조 교리는 우리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세상은 우연히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드러내는 창조세계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을 능력이나 조건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다른 사람, 약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창조와 과학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신뢰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해석을 절대화하지 않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기보다 진리를 사랑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창조 교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창조하셨으며,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자신과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게 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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