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왜 첫 장을 ‘성경에 관하여’로 시작할까요?
하나님은 누구신지, 인간은 왜 죄인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이 모든 것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답이 바로 성경입니다.
17세기 종교개혁 전통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특정 지도자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영국의 개혁주의 신학자 윌리엄 휘태커(William Whitaker)는 모든 교리가 성경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은 이러한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계시와 영감,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 명료성과 해석의 원리까지 살펴보면 왜 개혁주의 신앙에서 성경론이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항은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셨다는 사실, 즉 계시(Revelation)에서 출발합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시는 데 자연을 사용하십니다. 인간의 양심과 이성,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선하심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도르트 신조 역시 타락한 인간에게도 ‘자연의 빛’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일반계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특별계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여러 시대와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뜻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계시 →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함
특별계시 → 구원자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알게 함
기록된 말씀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의 계시는 처음부터 모두 기록된 형태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이후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개혁주의는 여기에서 중요한 원칙을 강조합니다.
교회가 말씀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보다 앞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경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서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보존하는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의 권위를 만들어 내는 기관은 아닙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이제 중지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완성과 충족성에 연결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2. 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가?
성경론에서 매우 중요한 두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경은 왜 권위를 가지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답은 분명합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인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영감을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에게 기계적으로 문장을 불러 주고 받아쓰게 했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기억, 경험, 언어와 문체를 실제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다윗, 바울과 요한의 글에는 각각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께서 그 기록 과정을 주관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인간 저자들의 실제적인 언어와 문체를 통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왜 외경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3항은 외경(Apocrypha)을 정경에서 제외합니다.
그 이유는 외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외경을 신앙과 생활을 규정하는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책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구약 외경의 일부를 정경으로 받아들인 로마 가톨릭의 입장과 중요한 차이를 이루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4항은 성경의 권위가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성경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이 본래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성령의 내적 증언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장엄함, 내용의 일관성, 구원의 중심 메시지,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 교회의 오랜 증언 등은 성경의 신적 기원을 보여 주는 중요한 외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하게 하는 것은 결국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언입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성경론은 이성 자체를 절대화하는 합리주의도 아니며, 객관적인 말씀을 떠나 개인적 체험만 강조하는 신비주의도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함께 강조됩니다.

3. 오직 성경은 신앙과 삶의 최종 기준이다
‘오직 성경’이라는 표현은 흔히 오해되기도 합니다.
오직 성경은 “성경 이외에는 아무 책도 읽어서는 안 된다”거나 “교회의 역사와 신학자의 가르침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 자신도 초대교회의 신조와 종교개혁자들의 저술, 교회의 전통과 여러 신학적 자료들을 폭넓게 참고했습니다.
핵심은 그 모든 것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충족성과 ‘선하고 필연적인 추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6항은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추론(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을 통해 성경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모든 신학 용어와 교회의 모든 상황이 문장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 자체가 성경에 그대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삼위일체 교리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성경 구절 하나만 문자적으로 떼어 사용하는 식의 성경엄수주의(biblicism)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를 살피고, 성경이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내용과 성경으로부터 정당하게 도출되는 결론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그 추론은 인간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적절하고 필연적인 논리적 귀결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충분하다
이 원리는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과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믿음과 삶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 밖의 새로운 계시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영감(Inspiration)과 조명(Illumination)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감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역사이고, 조명은 이미 기록된 성경을 우리가 바르게 깨닫고 믿도록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성경이나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을 성령의 조명 가운데 바르게 이해하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 원어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므로 신앙과 교리의 중요한 논쟁에서는 원문을 살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각 나라와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부 성직자나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읽고 듣고 이해해야 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명료한가?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의 모든 구절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쉽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핵심 진리는 성경 곳곳에 충분히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교도권을 가진 사람만 성경의 핵심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어려운 성경 구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9항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성경 자체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구절을 만났을 때는 더 명료한 성경 구절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흔히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본문의 문자적·문법적·역사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풍성한 적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본문의 의미와 무관한 자의적 해석을 경계한다는 의미입니다.
중세교회에서 사용되던 성경의 4중적 해석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을 해석하면서 역사적 도시, 교회, 신자의 영혼, 천상의 새 예루살렘이라는 여러 층위의 의미를 각각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때로 풍성한 신학적 묵상을 제공했지만, 본문의 역사적·문법적 의미와 분리될 경우 해석자의 주관에 따라 의미가 확대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개혁주의 성경 해석은 그래서 먼저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최종 재판관은 누구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0항은 성경론 전체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교리적 논쟁이 일어났을 때 특정 신학자나 목사, 교회회의나 전통이 최종적인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할 기준은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이 영감하여 기록하게 하신 말씀과 모순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누군가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가르침과 주장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은 전통과 교회와 신학자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두라는 선언입니다.
교훈과 적용|우리의 신앙은 무엇 위에 서 있는가?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교회의 전통과 이전 시대의 신학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학자나 교회의 가르침도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모든 교리와 신앙을 판단하는 최종 권위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중요합니다. 목회자의 설교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주장, 개인의 경험과 생각도 성경보다 높은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정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 분별해야 합니다.
박해 속의 성도들이 성경을 그토록 사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은 종교개혁 시대의 구호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기준으로 그것을 믿고 있는가?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두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 Chapter 1, Of the Holy Scripture (OPC)
- Westminster Assembly Project – The Confession of Faith
- Westminster Assembly Project – Principal Documents of the Assembly
총회전자자료실
총회전자자료실
gap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