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어떻게 의인이 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말씀과 성령으로 효과 있게 부르셔서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시는 은혜를 설명했다면, 제11장은 그리스도께 나아온 죄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하시는가를 다룹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Justification), 곧 의롭다 하심입니다.
칭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인 동시에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눈감아 주실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라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문제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도 깊은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심판하시는 두려운 의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장 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죄인을 정죄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전통에서 칭의는 복음의 중심 교리로 강조되었습니다. 칼빈 역시 칭의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돌쩌귀’에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면서도 여전히 의로우실 수 있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1장은 그 답을 인간의 공로나 변화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만족, 그리고 그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습니다.

1.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이다|11장 1-2항
칭의는 죄인을 실제로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제1항은 앞서 살펴본 효과 있는 부르심과 칭의를 직접 연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
이는 로마서 8장 30절의 구원의 순서를 반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칭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 안에 의를 주입하여 그 사람이 실제로 충분히 의로운 사람이 된 다음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과정이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칭의를 법정적인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재판에서 ‘정죄’가 유죄라는 판결이라면 ‘칭의’는 의롭다는 선언입니다.
칭의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포함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실제로 죄인인데 어떻게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을까요?
그 답이 바로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입니다.
주입된 의가 아니라 전가된 의
종교개혁 당시 칭의를 둘러싼 중요한 논쟁 가운데 하나는 주입된 의(infused righteousness)와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의 차이였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체계화된 로마가톨릭의 칭의 이해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 안에서 실제적인 의의 갱신을 이루는 것을 칭의와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세례를 칭의의 도구적 원인으로 말하며, 칭의 이후에도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인간의 협력을 강조합니다.
반면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죄인의 의로운 상태를 만들어 낸 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하심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칭의를 가르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가’란 계산하다, 여기다, 법적으로 귀속시키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선행이나 순종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의 믿음 자체도 칭의의 근거가 아닙니다.
그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루신 완전한 순종과 속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 복음의 놀라운 교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죄책은 그리스도께 담당되었고, 그리스도의 의는 믿는 자에게 전가됩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를 무시하시는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의로운 선언입니다.

믿음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수단이다
제2항은 칭의를 받는 유일한 수단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도구이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라는 행위가 훌륭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은 빈손처럼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는 도구(instrument)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가치는 믿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붙드는 대상인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칭의가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그 믿음이 “다른 모든 구원하는 은혜를 동반하며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약 2:17), 갈라디아서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행위 없이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지만, 의롭다 함을 받는 참된 믿음은 결코 열매 없이 홀로 머물지 않습니다.
2.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함께 나타났다|11장 3-4항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
아담의 범죄로 죄와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왔습니다. 제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에게는 죄책과 부패가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공의를 포기하셔야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3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순종과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공의를 충분하고 실제적이며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모범으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며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롬 3:25-26).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를 제거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을 제거하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장소가 아니라, 공의가 만족되고 은혜가 죄인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는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지만 값싼 은혜는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으로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칭의에는 성부·성자·성령의 구원 사역이 나타난다
제4항은 칭의를 영원 전부터 실제 믿음의 순간까지 넓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영원 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롬 4:25).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칭의를 작정하셨다고 해서 택자가 영원 전부터 실제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신앙고백은 “정하신 때에 성령께서 실제로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적용하시기 전까지는 의롭다 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칭의를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원 전에는 칭의가 작정되었고, 역사 속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칭의의 근거를 성취하셨으며, 정하신 때에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자에게 적용하십니다.
구원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 한 번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11장 5-6항
칭의는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죄의 용서는 계속 필요하다
제5항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실제적인 질문을 다룹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다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칭의는 반복적으로 얻었다가 잃어버리는 신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법정적인 선언이기 때문에 신자는 칭의의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칭의 이후의 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제자들에게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마 6:12). 요한일서 역시 신자들에게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요일 1:9).
여기에는 법정적 신분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구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신자가 죄를 범한다고 해서 매번 다시 정죄받은 죄인이 되어 칭의를 새롭게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며, 하나님과 누리던 교제의 기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 후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시 51:12)라고 기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며 죄를 고백하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회개는 칭의를 다시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와의 교제를 회복하며 살아가는 은혜의 길입니다.
칭의와 성화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칭의와 성화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칭의는 우리의 신분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고, 성화는 우리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칭의는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성화는 평생에 걸쳐 진행됩니다.
칭의는 완전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성화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칭의의 근거는 우리 안에 있는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러나 성화에서는 성령께서 실제로 우리의 성품과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렇다고 칭의와 성화를 분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개혁 전통에서는 둘을 구별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은혜로 이해해 왔습니다.
따라서 “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칭의 교리의 결론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며,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마지막 제6항은 구약과 신약의 구원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구약 아래에 있던 신자들의 칭의는 이 모든 점에서 신약 아래에 있는 신자들의 칭의와 동일하며 하나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3)
구약의 성도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구속사의 위치는 다르지만 구원의 근거는 동일한 그리스도이며, 칭의를 받는 방식 역시 믿음으로 동일합니다.
이것은 제7장에서 살펴본 하나의 은혜 언약과도 연결됩니다. 성경 전체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구원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은혜의 복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교훈과 적용|나는 무엇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칭의 교리는 인간의 모든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선하게 살았다”, “나는 더 많이 봉사했다”, “나는 믿음이 좋다”는 것을 근거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움의 근거는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우리 밖에 계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신앙생활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선행은 구원받기 위한 값을 지불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값없이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열매가 됩니다. 순종 역시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사람이 드리는 감사의 응답이 됩니다.
동시에 칭의와 성화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칭의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단번에 주어지지만, 성화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시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둘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신칭의는 방종이나 율법폐기론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는 않지만,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칭의에 관한 모든 신학적 용어를 알아야만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가 내게 없으며, 따라서 나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제11장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나의 선행도, 종교적 열심도, 심지어 믿음이라는 나의 행위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이루신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만족만이 우리의 근거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를 눈감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믿는 자에게 전가하시어 죄인을 값없이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은혜입니다.
참고자료
'지혜의 속삭임 >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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