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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속삭임/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 강해

[대요리문답 강해] 제160문: 같은 설교, 다른 반응 - 설교를 듣는 성도의 6가지 올바른 태도

by 전가치 202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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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의 외적 수단 - 말씀 설교: 158-160문 ]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설교자가 강단 위에서 어떤 태도와 목적으로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제159문)에 대해 배웠습니다.

설교자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바른 교리를 눈물로 선포하는 것이 강단의 책임이라면, 강단 아래에서 그 말씀을 받는 성도들에게도 엄중한 영적 책임이 있습니다. "왜 같은 예배당,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설교를 듣는데도 어떤 사람은 영혼이 뒤흔들리는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냉랭하게 팔짱을 끼고 돌아설까요?"

오늘 대요리문답의 마지막 은혜의 수단 강해인 제160문은,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합당한 태도와 들은 말씀을 삶으로 이어가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 제160문: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변: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지런한 태도와 준비된 마음과 기도로 설교를 주의해서 듣는 것입니다.

또한 설교를 성경에 근거해 검토하고,

성경과 일치하면 믿음과 사랑과 온유함과 간절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그 설교를 묵상하고 함께 나누며 공부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삶 속에서 그 열매가 맺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잠 8:34, 벧전 2:1∼2, 눅 8:18, 시 119:18, 엡 6:18∼19, 행 17:11, 히 4:2, 살전 2:10, 약 1:21, 행 17:11, 살전 2:13, 눅 9:44, 히 2:1, 눅 24:14, 신 6:6∼7, 잠 2:1, 시 119:11, 눅 8:15, 약 1:25)

1. 설교 전과 설교 중: 심령의 쟁기질 (듣기 위한 준비)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주일 아침 11시 정각에 시작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기 전, 우리의 마음밭을 먼저 기도로 기경해야 합니다.

  • 준비된 마음과 부지런한 태도 (벧전 2:1-2): 갓난아이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듯, 말씀을 향한 영적 갈망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예배와 수요일 밤 삼일기도회 등 공적으로 선포되는 은혜의 자리를 부지런히 찾아 기쁨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 기도로 준비하라 (시 119:18, 엡 6:18-19): 설교 시간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설교자가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그리고 듣는 나의 영적 눈과 귀가 열리도록 설교 전부터 설교자와 나 자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 설교 중: 무조건적 맹신이 아닌 "성경적 분별과 수용"

강단에서 선포된다고 해서 무조건 영혼 없는 '아멘'만 외치는 것은 건강한 개혁주의 성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 성경에 근거하여 검토하라 (행 17:11): 고대 베레아 성도들처럼, 선포된 설교가 정말 성경적이며 진리에 일치하는지 지성적으로 분별하며 들어야 합니다.
  • 성경과 일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라 (살전 2:13): 검토한 설교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다면, 그때부터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으로 경외함 가운데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 믿음 (히 4:2): 말씀이 내 삶에 역사할 것을 확신하는 마음.
    • 사랑 (살후 2:10): 진리를 기뻐하고 뜨겁게 수용하는 마음.
    • 온유함 (약 1:21): 내 자아와 교만을 내려놓고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태도.
    • 간절한 마음 (행 17:11): 은혜에 목마른 가난한 마음(마 5:3).

3. 설교 후: 삶에서의 소화와 열매 맺기

진정한 설교 듣기는 축도 후 예배당 문을 나설 때부터 진짜 시작됩니다. 듣고 잊어버리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 묵상하고 나누며 공부하라 (신 6:6-7): 예배 후 성도 간의 친교(코이노니아) 시간에 세상 이야기만 나눌 것이 아니라, 오늘 들은 설교 원고를 다시 보며 은혜를 나누고 함께 공부하십시오.
  • 마음속에 간직하라 (잠 2:1):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도록 주일 오후나 주중에 설교 노트를 다시 정리하거나, 나만의 설교 후기를 기록하며 말씀을 심령 깊이 새기십시오.
  • 삶 속에서 열매를 맺으라 (약 1:25):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에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행함이 없는 '수다쟁이(Mr. Talkative)'가 나옵니다. 우리는 말만 앞서는 종교인이 아니라, 들은 말씀 한 구절이라도 삶의 현장에서 행함으로 옮겨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눅 8:15).

[교훈과 적용] "설교를 어떻게 듣는가"가 당신의 인생과 영원을 결정합니다

1. 설교자를 분별하고, 동시에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마르틴 루터는 설교자의 무게감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한편의 설교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문을 당하고 돌을 나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설교자는 항상 괴로움을 당한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스스로 지옥 화염과 사탄의 분노에 뛰어드는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두려운 말씀과 사탄의 공격 사이에서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매주 생명을 깎아 설교를 준비합니다. 설교자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비방하기보다, 영적 부담감을 체휼하며 눈물로 그를 지탱해 주는 성도가 되십시오.

2. 교회의 생명력은 설교자와 청중의 태도 합만큼 경험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이 낮은 것은 기독교 설교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교회가 번성하려면 성경적 설교와 함께 성도들이 그 말씀을 들으려는 태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말씀을 대언하고(고후 2:17), 성도가 그 말씀을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의 음성으로 경청할 때(고후 3:18), 교회는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는 단순한 종교적 태도를 넘어, 내 영혼의 현재 주소이자 나의 영원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매주 돌아오는 주일예배 시간, 습관적으로 앉아있는 자리가 아니라 기도로 쟁기질 된 마음밭을 들고 나아오십시오. 선포되는 말씀을 성경에 비추어 달게 삼키고, 주중에 삶의 열매로 증명해 내는 진짜 '말씀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강해 전문(1~196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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