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앞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신 한 분 그리스도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제사장·왕의 삼중직을 수행하시며,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얼마나 완전한 것일까요? 십자가는 단지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사건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신 사건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5-8항은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순종과 희생 제사로 구원을 이루셨고, 그 구원의 효력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시대에 미치며, 자신이 구속하신 백성에게 그 구원을 확실하고 효과 있게 적용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선언은 구원이 거의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에 필요한 일을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이루셨다는 선언입니다.

1.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희생 제사|8장 5항
첫째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순종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크게 완전한 순종과 자신을 드린 희생 제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순종에 대한 복과 불순종에 대한 저주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언약을 깨뜨렸고 죄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는 죄인이 받아야 할 저주와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능동적 순종은 예수님께서 일생 동안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신 것을 가리키며, 수동적 순종은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서로 분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사역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순종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신자의 칭의는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에 근거합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이 죄와 죽음을 가져왔다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은 의와 생명을 가져옵니다.
우리 대신 형벌을 담당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담당하셨다는 의미에서 ‘형벌적’이며, 그 형벌을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담당하셨다는 의미에서 ‘대속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단순히 없었던 일처럼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요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충족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죄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자가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가볍게 여기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드러난 사건입니다.

2. 모든 시대에 효력을 미치는 한 분 그리스도의 구속|8장 6-7항
구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
제7장 언약에서 살펴본 중요한 질문이 다시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의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역사적으로 신약 시대에 일어났지만 그 구속의 능력과 효력은 십자가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약속과 모형, 희생 제사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켰습니다.
구약의 제물 자체가 사람의 죄를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제물이 가리키고 있던 궁극적인 실체, 곧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하여 죄 용서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와 신약의 성도에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구원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 가운데 믿었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여기서 칭의의 수단과 근거를 구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칭의를 받는 수단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공로는 아닙니다. 칭의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의입니다.
한 분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배고프셨고 목마르셨으며 피곤하셨고 잠드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참된 인간의 본성을 가지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은 제8장 2항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본성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섞여 제3의 본성이 되는 것도 아니며, 두 개의 독립된 인격으로 나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이 한 인격 안에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때때로 한 본성에 속한 것을 그리스도의 한 인격 전체에 돌려 표현합니다. 이를 전통적으로 ‘속성의 교류’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0장 28절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셨다”고 표현할 때, 피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속하지만 피 흘리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성의 속성이 인성으로 옮겨가거나 두 본성이 서로 섞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
이러한 두 본성의 구별은 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임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몸을 가지고 승천하셨으며 지금도 그 인성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과 참으로 함께하십니다.
성찬에서도 그리스도의 육체가 떡과 포도주 안에 물리적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은혜에 참되게 참여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개혁주의 성찬 이해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확실하고 효과 있게 적용하신다|8장 8항
구원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8항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를 흔히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라고 불러 왔으며, 그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확정적 속죄(Definite Atonement) 또는 **특정적 속죄(Particular Atonement)**라는 용어도 사용합니다.
여기서 ‘제한’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치나 능력 면에서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사람의 죄를 덮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그 구원의 효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백성에게 확실하게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단지 인간이 선택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가능성만 열어 놓은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실제로 구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구원을 적용하신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획득하신 구원을 자신의 백성에게 확실하고 효과 있게 적용하십니다.
이 과정에서도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나타납니다.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비밀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죄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설득하여 믿고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자신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를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이루셨고, 그 구원을 적용하시며,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보존하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확정적인 구속을 믿는다고 해서 복음 전도의 문이 좁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택자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선포와 성도의 기도 같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부르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선택의 비밀을 먼저 알아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진지하게 그리스도를 제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당신도 그 죄인입니다. 이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복음의 초청은 진실하며 누구에게나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음의 선포와 기도, 말씀과 성례라는 은혜의 수단을 충실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훈과 적용|“다 이루었다”는 말씀 안에서 안식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을 거의 다 하신 것이 아니라 전부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완성하려는 율법주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나 눈물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 기도와 복음 선포라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정확한 교리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자랑과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 완성된 구원 위에서 믿음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