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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속삭임/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 강해

[대요리문답 강해] 제173문: 신앙고백을 해도 성찬을 금지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 거룩한 식탁을 지키는 교회의 권세

by 전가치 202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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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의 외적 수단 - 성찬: 168-175문 ]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없고 의심하며 흔들리는 ‘연약한 성도’라 할지라도, 죄를 애통해하고 주님을 갈망한다면 성찬의 식탁으로 기쁘게 나아와야 한다는 위로의 말씀을 배웠습니다(제172문).

하지만 성찬의 문이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무분별하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대요리문답 제173문은 반대의 경우를 다룹니다. 입으로는 분명히 신앙을 고백하고 성찬을 받기를 원하지만, 교회가 단호하게 "당신은 성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금지(성찬 정지)해야만 하는 엄중한 기준에 대해 배웁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거룩한 권세와 성찬의 영적 무게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제173문: 믿음을 고백하고 성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답변: 믿음을 고백하고 성찬을 받고 싶어한다고 해도 그가 믿음을 고백하고 성찬을 받는 일에 무지하거나 그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드러난 경우에는, 그가 가르침을 받고 회개할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에 주신 권세를 따라 그에게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고전 11:27∼34, 마 7:6, 고전 5:1∼13, 유 1:23, 딤전 5:22, 고후 2:7)

1. ⚠️ 성찬에서 배제(정지)되어야 하는 두 가지 부류

성경은 성찬에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엄히 경고합니다(고전 11:27). 교회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에 성찬을 제한해야 합니다.

  • A. 성찬에 대한 무지 (Ignorance): 하나님 말씀과 교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신이 먹고 마시는 떡과 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별하지 못하는 이에게 성찬을 베푸는 것은 주님의 식탁을 가볍게 만드는 일입니다.
  • B. 수치스러운 일이 드러남 (Scandal): 자신의 신앙고백과 명백히 모순되는 부도덕하고 악한 삶의 행실이 대중 앞에 드러난 경우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주라 부르면서, 삶으로는 대놓고 죄를 즐기는 자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2. 🛡️ "내 팔을 잘라낼지언정!" - 거룩한 식탁을 지킨 칼빈의 개혁

역사 속에서 이 교리를 가장 치열하게 지켜낸 인물이 바로 존 칼빈(John Calvin)입니다. 1553년 당시 제네바 사회는 호색과 부도덕이 만연해 있었고, 심지어 "남자는 한 명의 내연의 처를 가질 수 있다"는 법조항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무시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성찬을 받으려는 정치가와 시의원(리베르탱 파)들을 향해, 칼빈은 목숨을 걸고 성찬상을 가로막으며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는 성만찬을 그렇게 수치스럽게 남용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 그리스도를 그런 비열한 조롱거리로 만드느니 내가 백 번을 죽는 것이 낫겠다.

이 손을 뭉개고 이 팔을 잘라내고 나서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피는 당신들의 것이니 마음대로 흘리게 할 수 있지만, 거룩한 것을 불경스런 자들에게 주고 하나님의 식탁을 더럽히도록 내게 강요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칼빈이 이토록 완강했던 이유는 성찬이 교회의 거룩함과 직결되며, 회개 없는 성찬 참여는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 ⚖️ 교회가 가진 권징의 올바른 한계와 기준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개혁주의 교회의 매우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 교회는 사람의 참된 '중생 여부'를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회원들에게 "당신이 진짜 구원받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거나, 신앙 체험을 완벽하게 설명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 평가의 기준은 오직 '신앙고백'과 '행실'입니다: 교회가 질문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당신의 입술의 고백이 바른가?" 그리고 "당신의 삶의 방식이 그 고백과 양립할 수 있는가?"입니다.
  • 권징의 목적은 '회복'입니다: 성찬을 금지하는 권징은 한 영혼을 영원히 쫓아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가 말씀의 가르침을 바르게 받고,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여 다시 거룩한 주님의 식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사랑의 징계입니다(고후 2:7).

[교훈과 적용] 은혜의 식탁을 경외함으로 대하십시오

  1. '무지한 성찬'이 되지 않도록 늘 배우십시오: 성찬식 때 무감각하게 떡과 잔을 받아먹는 타성에 젖지 마십시오. 대요리문답을 배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찬에 담긴 복음의 도리를 바르게 알고 참여할 때 비로소 참된 은혜가 임합니다.
  2. 나의 신앙고백과 삶이 일치하는지 돌아보십시오: 주님의 보혈로 씻김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삶 속에서는 세상의 부도덕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찬은 죄를 지으면서도 면죄부를 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은밀한 죄를 버리고 삶의 방식을 주님께 맞추십시오.
  3. 교회의 거룩한 권징을 존중하십시오: 오늘날 현대 교회는 권징을 잃어버려 거룩함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말씀에 근거하여 성찬을 제한하거나 바로잡을 때, 그것이 성도의 영혼을 살리고 주님의 식탁을 보호하려는 그리스도의 권세임을 인정하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무한한 자비가 베풀어지는 식탁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서려 있는 엄위한 자리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으로 아파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열려 있지만, 말씀에 무지하고 죄를 고집하며 교회를 더럽히는 자에게는 단호히 닫히는 곳이 바로 주의 만찬입니다. 교회가 이 거룩한 성찬의 질서를 바르게 지켜나갈 때, 하나님의 신령한 복과 임재가 우리 가운데 더욱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강해 전문(1~196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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