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속삭임/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강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9) - 자유 의지

전가치 2026. 10. 26. 16:4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9장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다룹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유를 흔히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본래 중립적이며, 선과 악 가운데 어느 쪽이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의지를 그 사람의 본성과 분리해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분명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의지는 마음의 성향과 욕구를 따라 움직입니다. 따라서 자유 의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아담의 타락이 인간의 본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론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면 은혜는 구원을 돕는 역할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과 의지까지 부패했다면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9장은 앞에서 다룬 창조와 타락의 교리를 정리하면서, 이후에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구원 사역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1. 자유 의지의 본질은 무엇인가?|9장 1항

본성의 자유와 인간의 책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9장 1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에 본성의 자유를 부여하셨다. 이 본성의 자유는 강요받지 않으며 또한 본성의 어떤 절대적인 필연성 때문에 선이나 악을 행하도록 결정되어 있지도 않다.”

여기에서 핵심은 본성의 자유(natural liberty)입니다.

인간은 외부의 힘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와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합니다. 타락 이후에도 이러한 자발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죄인은 억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타락으로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자유는 선택지의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선택지가 많으면 더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유의 본질을 단순히 선택 가능성으로 정의하면 하나님의 자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히 6:18). 하나님께서 악을 선택하지 않으시는 것은 외부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 완전히 선하고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선한 본성에 아무런 방해 없이 일치하여 행동하는 것이 가장 완전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핵심은 선택지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따라 강요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이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됩니다. 문제는 인간에게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의지가 어떤 본성을 따라 움직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본성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

타락한 인간에게도 여러 가지 본성적 능력은 남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예배에 참석할 수 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의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롬 3:11).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의 강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마음의 성향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의지력의 강화가 아닙니다. 죄로 기울어진 본성 자체가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중생은 인간에게 없던 의지를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박된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타락 이후 인간의 의지는 어떤 상태인가?|9장 2-3항

아담에게 주어졌던 자유

제2항은 타락 이전의 인간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원하고 행할 능력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무죄 상태에서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원하고 행할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가변적이어서 사람이 타락할 수도 있었다.”

아담은 죄의 지배 아래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었고 선을 행할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아직 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범죄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는 어거스틴 이후 흔히 네 단계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상태인간 의지의 특징
무죄의 상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 타락할 수도 있음
죄의 상태 자신의 힘으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
은혜의 상태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음
영광의 상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선만을 기뻐함

타락의 결과는 인간의 의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향과 영적 능력이 달라진 것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만 이제 죄로 부패한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구원에 이르는 영적인 선에 대한 무능력

제3항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람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빠짐으로 구원과 관련된 영적 선을 행할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과 관련된 영적 선”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타락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선행이나 시민적인 덕을 전혀 행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연인도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돕고 사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죄 가운데 죽은 인간은 스스로 회심할 수도 없으며 회심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엡 2:1-5; 고전 2:14).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 요한복음 6:44

이것이 개혁주의가 말하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와 연결됩니다. 전적 부패는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가장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인간의 지성과 감정, 욕구와 의지를 포함한 전인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까지 필요한가?

자유 의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구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웨슬리안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을 통해 타락한 인간에게 복음에 응답할 능력이 회복되며, 인간이 그 은혜에 응답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믿음과 회심 자체도 하나님의 효과적인 은혜의 역사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구원에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로 그분께 나아오는 것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자신의 힘으로 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에는 인간의 결심을 보조하는 정도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네 가지 상태

 


3. 은혜로 회복되고 영광에서 완성되는 자유|9장 4-5항

회심은 의지의 파괴가 아니라 해방이다

제4항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심시키실 때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심케 하셔서 은혜의 상태로 옮기실 때, 죄 아래 있는 본성의 속박에서 죄인을 자유롭게 하시며, 오직 은혜에 의하여 영적으로 선한 것을 자유롭게 원하고 행할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의지를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원하지 않는 사람을 외적으로 강제하여 억지로 믿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심으로 그리스도를 원하도록 변화시키십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멀리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죄를 즐기던 사람이 죄를 슬퍼하며,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이 변화를 잘 보여 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은혜는 의지를 강제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박된 의지를 해방하여 하나님을 기쁨으로 원하게 합니다.

은혜의 상태에서 경험하는 두 갈망

회심했다고 해서 죄의 영향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4항은 신자 안에 남아 있는 부패성 때문에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원하는 갈등이 계속된다고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과 로마서 7장이 보여 주는 것처럼 신자는 성령을 따라 살고자 하는 소원과 남아 있는 죄의 욕망 사이에서 싸웁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단순히 행동 몇 가지를 고치는 과정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순종하려는 거룩한 갈망을 자라게 하시고, 죄를 향한 욕망을 죽여 가시는 과정입니다.

이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결심만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와 성례 등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통상적인 수단을 지속적으로 사용합니다.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 가장 완전한 자유이다

제5항은 자유 의지의 마지막 상태를 보여 줍니다.

“사람의 의지는 오직 영광의 상태에서만 완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자유롭게 오로지 선으로만 향하게 된다.”

영광의 상태에서는 죄의 부패와 성향 자체가 사라집니다. 성도는 더 이상 죄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온전히 기뻐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자유 개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죄를 선택할 가능성이 사라지면 자유도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자유는 정반대입니다.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유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선택하지 않으시면서도 완전히 자유로우신 것처럼, 영화롭게 된 성도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아무런 방해 없이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광의 상태에서 누리는 완전하고 변함없는 자유입니다.


교훈과 적용|나는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9장은 자유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습니다. 자유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본성과 마음의 방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영적으로 무능하다면 자신의 죄에 책임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신앙고백은 인간의 자발성을 강조합니다. 죄인은 외부의 강제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에 책임이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에게 의지가 있다는 사실이 곧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죄인은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만 죄로 부패한 마음은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에는 단순한 조언이나 의지력의 강화가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중생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인격과 의지를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에 매여 있던 의지를 풀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도록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참된 자유의 회복입니다.

 

이 교리는 우리의 성화에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더 강하게 결심해야 한다”는 자기 의지의 훈련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갈망이 자라고 죄를 향한 욕망이 약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자유를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참된 자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쁨으로 사랑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