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7)-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은 인간의 타락과 죄, 그리고 그 결과로 주어진 형벌을 다루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은 이 질문에 ‘언약’이라는 중요한 개념으로 답합니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차이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고 지혜롭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서 관계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에게 다가오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참된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언약이 시작됩니다.
언약은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은혜로운 방식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이해하면 성경 전체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창조와 타락, 이스라엘과 교회,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1. 하나님은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는가?|7장 1-2항
언약은 하나님의 낮아지심에서 시작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 1항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창조주로 경배해야 하지만,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다가오셔야 합니다.
언약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발적인 낮아지심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언약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언약의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몇 가지 규칙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며 관계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언약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복음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단순한 규칙과 규정의 집합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관계는 막연한 감정적 관계가 아니라 언약으로 정의된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안에서 자신이 누구신지, 자신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언약은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방법이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첫 번째 언약, 행위 언약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을 흔히 행위 언약(Covenant of Works)이라고 부릅니다.
언약의 대표자는 첫 사람 아담이었으며 그의 후손도 그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순종을 요구하셨고, 그 명령 안에는 생명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행위 언약의 조건은 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락 이전의 아담은 죄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아야 할 상태가 아니었으며 하나님께 순종할 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유롭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제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죄와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행위 언약이 하나님의 은혜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자신을 낮추어 언약을 맺으시고 생명을 약속하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발적인 선하심과 낮아지심에 기초합니다.
2.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은혜 언약|7장 3-4항
두 번째 언약, 은혜 언약
아담이 타락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더 이상 행위 언약이 요구하는 완전한 순종을 이룰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준을 낮추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과 의의 기준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인간이 이루지 못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의 핵심입니다.
은혜 언약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제공하시는 언약입니다.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따라서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두 대표자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행위 언약의 대표자이고,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은혜 언약의 대표자입니다.
첫 번째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면,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의와 생명이 주어집니다.
은혜 언약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이다
은혜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스스로 완전한 순종을 이루어 구원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생명에 필요한 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인간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을 능력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만 은혜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며 구원의 은혜를 적용하십니다.
이 점에서 은혜 언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조건을 요구하시면서 동시에 그 조건을 이루도록 필요한 은혜까지 친히 공급하십니다.
은혜 언약은 ‘유언’의 성격도 가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 4항은 은혜 언약을 성경에서 때로 유언(testament)이라는 의미로 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9장 15-17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유언은 유언자가 주도적으로 정하며 죽음을 통해 그 효력이 나타납니다. 이런 점은 은혜 언약의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과 협상하여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약속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 언약의 복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신약을 New Testament, 곧 ‘새 언약’ 또는 ‘새 유언’이라고 부르는 의미도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은혜 언약의 중심에는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완전하게 순종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3. 하나의 은혜 언약, 서로 다른 시행|7장 5-6항
구약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언약을 이해하면 많은 성도들이 한 번쯤 가져보는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구약의 성도들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고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 가운데 바라보았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앞으로 성취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셔서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바라보는 방향은 달라도 구원의 중심은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은혜 언약이다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은혜 언약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시대에 따라 시행 방식이 다릅니다.
구약의 ‘율법 시대’에는 약속과 예언, 희생 제사, 할례와 유월절 어린양 등 여러 규례를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와 예표였습니다.
반면 신약의 ‘복음 시대’에는 예표가 가리키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설교와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이 더욱 명백하고 충만하게 선포됩니다.
구약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라고 약속했다면 신약은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표현처럼,
“신약은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언약적 관점은 구약과 신약을 서로 다른 두 종교처럼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두 시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언약은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언약을 다루는 제7장의 위치도 의미가 있습니다.
제6장은 인간의 타락과 죄를 다루고, 제8장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7장 하나님의 언약이 놓여 있습니다.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을 베푸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성경의 여러 교리를 따로 떨어진 지식으로 배우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창조 → 행위 언약 → 타락 → 은혜 언약 → 그리스도의 구속 → 교회 → 완성이라는 하나의 큰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성경을 바라보게 합니다.
교훈과 적용|언약을 알면 복음과 교회가 다르게 보인다
언약은 처음 접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언약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성경의 여러 부분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왜 구약에 그렇게 많은 제사와 규례가 있는지, 왜 아브라함이 중요한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세례와 성찬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 전체의 중심인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특히 언약은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 연결됩니다.
구원의 출발점이 나의 결심과 성취에 있다면 우리의 확신도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 언약의 출발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약속하셨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필요한 일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결국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붙들고 있는가?”보다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바라보는 데서 자라납니다.
언약은 또한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꾸어 줍니다.
교회는 단순히 같은 종교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와 성찬 역시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닙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언약 공동체에 속함을 보여 주며, 성찬은 한 떡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계속 확인하게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도 개인의 신앙생활만을 염두에 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도 연결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나의 구원을 나의 노력과 결심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신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세운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먼저 약속하신 은혜의 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