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6)-사람의 타락, 죄 그리고 형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처음부터 죄인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창세기 1장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모습과 너무나 다릅니다. 전쟁과 폭력, 미움과 탐욕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시기와 교만, 욕심과 거짓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세상에 죄와 악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은 바로 이 질문을 다룹니다. 인간의 타락은 단순히 오래된 종교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죄와 죽음의 현실을 설명하는 출발점입니다. 동시에 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야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지도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인간은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가?|6장 1-2항
첫 번째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다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매 자체에 어떤 악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인간이 그 명령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에게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나는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다.”
인간은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받았지만 인간 위에는 언제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따라서 첫 범죄의 본질은 단순히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행동에 있지 않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를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이 되려 했던 불순종과 반역에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동시에 이 첫 범죄조차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지만,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 가운데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셨으며 그 사건조차 궁극적으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속의 역사 속에서 사용하셨습니다.
타락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아담과 하와를 단순히 인간의 악한 본성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적 인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들을 “우리의 첫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담의 타락이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 단순한 우화라면 죄가 어떻게 인간에게 들어왔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표자의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아담을 통해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면,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와 생명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역사성과 대표성은 단순한 창조론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연결되는 중요한 교리입니다.
죄가 가져온 가장 큰 상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 누렸던 의를 잃었으며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졌습니다.
죄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단순히 삶이 힘들어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던 인간이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의 영혼과 몸, 지성과 감정, 의지와 양심을 오염시켰고 결국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죄의 가장 비참한 결과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2. 아담의 죄는 어떻게 우리의 죄가 되었는가?|6장 3-5항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였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인이 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아담을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뿌리이며 언약적 대표자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아담의 첫 범죄에 대한 죄책이 그의 후손에게 전가되었고, 타락한 본성 역시 그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통상적인 출생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것을 원죄(original sin)라고 합니다.
원죄는 단순히 “아담이 오래전에 지은 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그로 인해 부패한 인간 본성이 그의 후손에게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적 부패란 인간이 가능한 한 가장 악하다는 뜻일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타락한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가능한 최악의 악을 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돕고 희생하며 사회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적 부패의 핵심은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간의 영역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행동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와 욕망, 양심과 판단까지 인간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염된 강의 상류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린다면 하류의 어느 한 부분만 깨끗하게 만든다고 해서 강 전체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외적으로 선해 보이는 모습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근원 자체가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전적 부패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원죄에서 자범죄가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4항은 우리의 자범죄(actual sins)가 이러한 원초적인 부패에서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죄는 행동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살인이라는 행동만이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까지 다루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마음속에 존재하던 죄가 열매를 맺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큰 죄를 바라보며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안에도 동일한 죄의 씨앗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죄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한 사람에게서는 죄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질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생은 우리를 죄의 지배에서 해방시키지만 본성의 부패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성령을 따라 살고자 하는 소원과 육신의 욕망 사이에 실제적인 싸움이 존재합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죄가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마음의 죄까지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성화를 추구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3. 죄에는 왜 형벌이 따르는가?|6장 6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원죄와 자범죄 모두가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죄책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며 영적·현세적·영원한 비참함과 죽음에 처하게 됩니다.
이 표현은 현대인에게 상당히 무겁게 들립니다.
그러나 죄의 형벌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심각한 범죄가 일어났는데 재판관이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죄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치신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모순됩니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죄라고 판단하시며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죄가 가져온 세 가지 비참함
죄가 가져오는 형벌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먼저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단절되었습니다.
둘째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의 여러 현세적인 비참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이웃, 그리고 창조세계와의 관계까지 깨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죄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심판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죄는 단순한 실수나 인간적인 약점 정도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인간 존재 전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죄의 깊이를 알 때 복음의 은혜가 보인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인간의 타락과 죄와 형벌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목적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범죄한 후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음에도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 안에서 죄와 죽음이 찾아왔다면,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와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의 마지막이 아니라 복음의 은혜를 더욱 깊이 발견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교훈과 적용|죄를 아는 만큼 그리스도의 은혜가 보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문제이며, 인간 존재 전체를 오염시켰고, 우리의 마음에서 실제적인 자범죄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가져오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보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리 안에도 교만과 미움, 탐욕과 자기중심성의 씨앗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깊이 바라보는 목적은 자기혐오나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도록 죄를 한꺼번에 드러내어 절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다시 복음의 은혜로 돌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그래서 참된 회개는 단순히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국 제6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죄를 다른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있는가?”
죄의 깊이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절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