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3)-하나님의 영원한 작정2
예정 교리를 생각하면 흔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누가 선택받았고, 누가 선택받지 못했는가?”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예정 교리를 가르치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추측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의 구원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이루어지며, 무엇 때문에 끝까지 확실한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제3장 1–5항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주권, 예정과 선택을 설명했다면, 6–8항은 그 작정이 실제 구원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최종 목적만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는 모든 과정과 수단까지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따라서 예정 교리는 차갑고 추상적인 운명론이 아닙니다. 성부께서 영원 전에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셨으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은 구원의 목적과 수단을 함께 정하셨다|3장 6항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갑자기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목적뿐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는 모든 수단도 함께 작정하셨습니다.
택자 역시 본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죄인이며, 에베소서 2장 3절의 표현처럼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은 어떤 사람에게 숨어 있는 선함이나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입니다.
예정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다
하나님의 선택은 죄인을 아무런 과정 없이 곧바로 영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부수적인 과정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 중심적인 수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에 이르게 하시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예정론에서 그리스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정은 단순히 ‘누가 구원받을 것인가’를 정하는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교리입니다.
영원한 계획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영원 전에 세워졌지만 그 계획은 역사와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성부께서는 영원 전에 구원을 작정하시고, 성자께서는 역사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는 정하신 때에 그 구원의 효력을 택자에게 적용하십니다.
이는 세 하나님이 서로 다른 구원 계획을 실행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 분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흔히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로마서 8장 30절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효과적인 부르심 → 믿음과 칭의 → 양자됨 → 성화 → 견인 → 영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질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단계 사이에 반드시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믿음과 칭의는 실제 구원의 경험에서 분리된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논리적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관계를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백성을 위한 확실한 구속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6항은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과 선택의 관계를 분명하게 연결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흔히 특정 구속(definite atonement)이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제한 속죄’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가 부족하거나 제한적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백성을 실제로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예정이 구체적이고 특정하다면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적용 역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가능성만 열어 놓고 인간의 결정에 따라 최종 결과가 불확실해지는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며 성령께서 적용하시는 확실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목적만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목적에 이르는 모든 길까지 준비하셨습니다.

2. 유기와 하나님의 공의|3장 7항
예정 교리에서 가장 어렵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가 유기(reprobation)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선택과 유기를 말하지만, 두 가지를 완전히 동일하고 대칭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선택에서 하나님은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며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반면 유기에서 하나님은 죄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악을 만들어 넣어 멸망하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지나치시고(pass by) 그들이 자신의 죄 가운데 행하도록 내버려 두시며, 결국 그 죄에 대해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유기는 ‘간과’와 ‘정죄’로 이해할 수 있다
유기를 이해할 때 간과하심과 정죄하심을 구분하면 도움이 됩니다.
간과하심은 하나님께서 선택에서 나타나는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죄인을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 두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정죄는 그 사람이 실제로 범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을 억울하게 정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인이 심판받는 근거는 그 자신의 죄입니다.
여기에서 선택과 유기의 중요한 비대칭성이 나타납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이지만, 정죄의 근거는 죄인의 죄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선해서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없고, 심판받는 사람이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악하게 만들어 심판하셨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그렇다면 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처럼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영광을 드러내고, 죄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멸망 자체를 즐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공의로운 재판장이 악을 영원히 외면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죄를 의롭게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예정 교리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여 공의를 지워서도 안 되고, 공의만 강조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를 잊어서도 안 됩니다.
3. 예정 교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3장 8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예정 교리를 설명한 마지막에 매우 중요한 경고를 덧붙입니다.
이 교리는 특별한 신중함과 주의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정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신학적인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한 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범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정에는 유한한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영역까지 들어가 “누가 선택받았는가?”, “왜 하나님은 이 사람은 택하시고 저 사람은 택하지 않으셨는가?”를 추측하는 것은 예정 교리의 올바른 사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정에 관해 말씀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감추어진 모든 계획을 해독할 열쇠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주권적이고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은 선택받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에만 매달리기보다,
“죄인인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믿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 앞에 서면 자랑할 것은 사라지고 감사만 남게 됩니다.
예정은 불안이 아니라 확신을 위한 교리다
예정 교리를 잘못 이해하면 “혹시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불안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이 교리를 제시하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예정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목적과 신실한 은혜에 구원의 기초를 두게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감추어진 작정 속을 들여다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약해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목적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정은 거룩한 삶으로 이끈다
예정 교리는 게으름의 근거도 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선택받았다면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말하는 예정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마지막 결과뿐 아니라 성화와 견인이라는 과정까지 정하셨습니다. 은혜로 선택받았음을 깨닫는 사람에게서 나타나야 할 자연스러운 반응은 방종이 아니라 감사와 순종, 겸손과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정 교리를 바르게 이해할 때 나타나는 열매는 두려움이나 자랑이 아닙니다.
겸손, 경외, 확신, 감사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교훈과 적용|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라
예정 교리를 대할 때 우리의 생각은 성경이 말씀하는 범위와 방식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추측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계시하신 은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왜 어떤 사람은 선택받지 않았는가?”에서 멈추기보다 “왜 나와 같은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이토록 큰 자비를 베푸셨는가?”로 향해야 합니다. 그 질문 앞에서는 인간의 자랑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믿음은 때때로 흔들립니다. 그러나 구원의 근거는 흔들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만 고정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계획하고 이루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예정 교리의 마지막은 논쟁보다 경외와 찬송이어야 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예정은 인간의 자랑을 위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는 교리이며, 흔들리는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위로의 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