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2) - 양자 삼으심/양자 됨
Introduction|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1장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칭의의 근거이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는 법정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신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시고 자녀의 신분과 특권까지 주십니다. 이것이 제12장이 다루는 양자 삼으심(Adoption)입니다.
제12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가운데서도 매우 짧은 장으로, 단 하나의 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채드 반 딕스훈은 그 배경으로 17세기 당시 양자 됨을 독립적으로 다룬 신학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 이 교리를 둘러싼 논쟁이 다른 교리에 비해 적었다는 점, 그리고 양자 됨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원의 확신이 제18장에서 별도로 다루어진다는 점 등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분량이 짧다고 중요성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J. I. 패커는 양자 됨을 복음이 주는 최고의 특권으로 강조했습니다. 칭의가 죄인과 재판장이신 하나님 사이의 법적 관계를 다룬다면, 양자 됨은 우리를 자녀와 아버지라는 사랑의 관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칭의에서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양자 됨에서는 그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1. 칭의에서 양자 됨으로|신분을 넘어 관계의 변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양자 되는 은혜에 참여하게 하신다.”
여기서 칭의와 양자 됨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것을 시간적인 순서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칭의를 받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양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함께 주어지는 구원의 복을 서로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칭의·중생·양자 됨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칭의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됩니다.
중생은 본성의 변화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양자 됨은 관계의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시고 자녀로 삼으십니다.
따라서 양자 됨은 칭의를 다른 표현으로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양자 됨을 칭의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하여 설명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를 독립된 장으로 다룹니다. 이를 통해 칭의와 구별되는 양자 됨의 풍성한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그 근거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우리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양자 됨의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며, 갈라디아서 4장 4-5절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목적을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따라서 양자 됨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에게 주시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칭의가 법정의 언어라면 양자 됨은 가정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에서 건져내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이십니다.

2.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특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양자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여러 특권을 한 문장 안에 매우 풍성하게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고, 양자의 영을 받으며,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긍휼과 보호와 공급과 징계를 받고, 결코 버림받지 않으며,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고, 약속들을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게 된다
양자 됨의 첫 번째 변화는 소속의 변화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은 그리스도인들을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부릅니다.
‘권속’은 한 집안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같은 종교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아버지를 모시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성공, 사람들의 평가보다 더 근본적인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성전에 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묘사됩니다(고후 6:16). 양자 된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양자 됨의 가장 친밀한 특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양자의 영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드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멀리 계신 절대자에게 소원을 전달하는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자녀가 아버지께 자신의 필요와 아픔을 가지고 나아가는 관계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격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아버지의 돌봄과 징계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라는 이름만 주시고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시편 103편 13절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30-32).
여기에는 보호와 공급뿐 아니라 징계도 포함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제11장에서 살펴본 칭의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는 다시 정죄하기 위한 형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자녀를 버리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자녀를 바로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훈련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징계를 받을 수 있지만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영원한 유업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는다
양자 됨의 은혜는 현재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에게 약속하신 미래와 연결됩니다.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자녀가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8장 35절도 말합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따라서 양자 됨은 구원의 확신과 성도의 견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는 단순한 소속을 넘어 관계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자녀에게는 유업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유업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받는 물질적인 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는 궁극적인 유업은 하나님 나라와 완성될 구원입니다.
현재의 삶에는 고난과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변하는 현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현재의 형편으로 자신의 미래를 판단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유업으로 현재를 바라봅니다.
교훈과 적용|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살아가는가?
양자 됨의 교리가 신앙생활에 주는 중요한 열매는 평안과 안전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형편이 좋을 때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 감정의 변화와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쉽게 단정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기도의 태도도 바꿉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을 자격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하고, 죄를 범했을 때에도 하나님에게서 도망치기보다 회개하며 다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다른 성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한 아버지를 모시는 형제와 자매입니다. 양자 됨의 은혜는 개인적인 위로를 넘어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돌보는 교회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양자 됨은 세상의 평가보다 깊은 정체성을 줍니다. 직업과 재산, 성공과 실패, 사람들의 인정은 변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장 중요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너는 내 자녀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멀리 계신 심판자로만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아 주신 아버지로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양자 됨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유업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은혜입니다.